Chapter Text
이 썩어 없어질 존재는,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으로 변화하리니.
(고린도전서 15장 53절)
운명의 선은 그어졌고, 저주는 이미 시작되었지.
지금 뒤처진 자는 훗날 앞서 나갈 것이고,
지금 현재는 나중에 과거가 될 거야.
(The Times They Are A Changin', Bob Dylan)
세베루스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는 커다란 버드나무 뿌리 아래 숨겨져 있다. 그곳엔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만한 빈 공간이 얽힌 뿌리들 사이에 입을 벌린 채, 너를 통째로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아래로, 아래로, 더 깊은 땅속으로.
해와 달마저 저버린 낮은 터널을 발견한다. 그곳에선 칠흑 같은 어둠만이 유일한 동반자일 뿐이다.
아래로, 더 아래로.
그곳은 고요하다. 바람 한 점 없는 밤의 정적처럼, 베개로 얼굴을 짓누르는 것 같은 답답함 속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터널을 따라 내려갈수록 심장 박동은 점점 더 거세게 요동친다.
땅속을 울리는 천둥 같은 심장 소리. 문을 두드리는 주먹처럼, 바닥을 내달리는 짐승의 발소리처럼.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커지고, 커지다가— 마침내 늑대의 형상을 한 죽음이 들이닥친다.
낮게 깔리는 으르렁거림.
“도망쳐!”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공포에 질려 몸을 굳힌 채 헐떡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 시트가 나무뿌리처럼 팔다리를 칭칭 감아 땅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마침내 근육의 긴장이 풀리자, 그는 옆으로 돌아누워 마치 방금 전까지 무언가에 쫓기듯,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던 것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보였다. 흙투성이의 어두운 터널, 괴물의 아가리, 그리고 그 끔찍한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던 거품 섞인 침. 세베루스는 꿈에 나온 터널의 세세한 부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거의 매일 밤 꾸는 꿈이었으니까.
스피너즈 엔드의 가로등은 늘 그랬듯 깜빡거리고 있었다. 여름 방학 동안 어쩔 수 없이 집이라 불러야 했던, 낡고 초라한 이층집. 그곳의 창문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세베루스의 침실로 흘러들었다. 방은 비좁았다. 벽에 딱 붙여놓은 침대 하나와 구석에 처박힌 낡은 서랍장이 전부였다. 서랍 하나는 비스듬히 열린 채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몇 번의 거친 숨을 몰아쉬자, 꿈은 다시 잔인한 무의식의 심연으로 물러갔다. 세베루스는 손을 뻗어 시계를 확인했다. 한숨이 나왔다. 이제 막 자정이 지난 시각이었다.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건만, 이제 와서 잠들지 못한 채 똑같은 공포를 되풀이하며 누워 있을 생각만 해도 고역이었다. 세베루스는 끙 소리를 내며 딱딱한 침대에서 다리를 내리고 일어났다. 바닥에 던져두었던 머글 바지를 집어 들었다. 주머니가 또다시 찢어진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 채 바지를 꿰어 입었다. 그다음, 몇 주 전 구제 가게에서 몰래 가져온 평범한 검은색 티셔츠를 찾아 입었다. 마지막으로 먼지 쌓인 카펫 위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해진 작업화를 신었다.
그 신발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세베루스의 원래 신발은 발가락 쪽에 난 구멍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낡아빠진 신발을 꺼내 주며, 대단한 선물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건넸다. 그저 냄새나는 늙은이의 더러운 신발일 뿐인데. 어머니가 지팡이로 가볍게 한 번 휘두르기만 해도 고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이 신발을 신어야 하는 상황에 감사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아일린 스네이프는 수년 전에 마법을 포기했었다. 세베루스의 아버지는 머글이자 마법을 혐오하는 더러운 인간이었고, 그와 평화롭게 살기 위해 그녀는 모든 마법을 침대 밑 트렁크에 깊숙이 가두어 버린 것이다.
그 선택만큼은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신발은 너무 커서 뒤꿈치에 물집이 잡혔다. 학교였다면 직접 신발을 줄였겠지만, 그는 아직 미성년 마법사였기에 마법을 부릴 수 없었다. 이번 여름 내내 그랬듯, 세베루스는 열일곱 번째 생일을 간절히 떠올렸다. 다섯 달만 지나면 성인이 된다. 그러면 스피너즈 엔드에 그를 옭아매고 있는 사슬이 마침내 끊어질 것이다. 마음대로 마법을 쓰고, 순간이동을 하고, 이 더러운 동네의 더러운 집을 떠나 영원히,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다섯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지나치게 큰 신발을 신고 방을 가로지르자 마룻바닥이 삐걱거렸다. 그는 최대한 소리를 죽여 방문을 열고 좁은 복도로 나갔다. 부모님 방의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부엌으로 이어지는 비좁은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갔다. 싱크대 주변에 파리 몇 마리가 윙윙거리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의 작은 점들 같았다. 거실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던 그는 라디오의 낮은 웅웅거림에 몸이 굳어버렸다.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거실 문 너머를 엿보았다. 아버지가 창가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거미 같은 다리를 길게 뻗고, 맨발 하나가 카펫을 긁고 있었다. 세베루스와 꼭 닮은 그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창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드러났다.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다. 한쪽 팔은 축 처진 머리를 받치고 있었고, 의자 옆으로 늘어뜨린 다른 쪽 손에는 빈 병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들려 있었다.
긴 침묵 속에서 세베루스는 어둠 너머로 아버지의 모습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숨을 죽인 채 그 곁을 지나 현관문을 향했다. 조용히 자물쇠를 풀고, 그는 어둠 속으로 빠져나갔다.
스피너즈 엔드의 거리로 나오자 공장이 거대하고 그림자 짙은 오벨리스크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세베루스는 스스로 떠올린 비유가 꽤 마음에 들었다. 이 죽어가는 마을에서 그 공장만큼 죽음과 과거의 기억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존재도 없었기 때문이다. 석 달 전, 공장주인은 재정난을 핑계로 서둘러 문을 닫았다. 더 이상 희망이란 없다는 듯이. 그는 홀가분하게 런던으로 떠나버렸고, 코크워스라는 마을을 그대로 썩어가게 내버려 두었다.
그날 이후 코크워스는 서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 절반이 일자리를 잃었다. 스피너즈 엔드는 사실상 공동묘지나 다름없었다. 평소에도 술 없이는 못 살던 아버지는 세베루스가 보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위험한 술독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다섯 달만 더 있으면 세베루스는 열일곱이 된다.
그리고 떠날 것이다.
너무 큰 신발이 발목 주위에서 펄럭거렸다. 그는 코크워스의 음침하고 인적 없는 거리를 걸었다. 강가의 더러운 둑을 따라 걷다가, 잠깐의 고민 끝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흙투성이 조약돌 한 줌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는 유령 마을 속의 유령처럼 계속 걸었다. 기억 속에서는 성스러운 장소였으나 이제는 묘지나 다름없어진 놀이터를 지나, 구불구불한 길과 좁은 골목을 지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발이 이곳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았다. 거의 매일 밤 찾아오는 곳이었으니까.
세베루스는 봅빈 거리 뒷골목의 그림자 속, 쓰레기통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몇 마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촘촘히 붙어 있는 작은 연립주택들은 모두 어두웠고, 이 늦은 시각 주민들은 틀림없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단 한 곳만 빼고.
그가 서 있는 집의 2층 창문에서 불빛이 등대처럼 새어 나오고 있었다. 펄럭이는 분홍색 페이즐리 무늬 커튼 사이로, 머글들의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때 릴리 에반스가 나타났다.
그녀는 그를 보지 못했다. 보려 하지도 않았다.
세베루스가 실수로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릴 그 단어를 내뱉은 지 한 달이 훨씬 넘었다. 잡종. 의도한 게 아니었다. 도발을 당했고, 화가 났고, 그리고… 그는 머릿속을 털어내려는 듯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지난해 호숫가에서의 폭발적인 순간으로 이어진 사건들이, 평소라면 정연하게 가라앉았을 그의 마음속을 어지러운 스노 글로브 속 반짝이들처럼 흩어 놓았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도, 논리적으로 정리해 이해할 수도 없었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골치 아픈 생각들을 모두 꺼내 작업대에 펼쳐놓고 해부할 수 있다면, 조각조각 잘라내어 다시 맞춰보고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방법을 몰랐다. 끝없이 소용돌이치며 끓어오르던 복잡한 생각들은 한때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세상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그곳으로 숨어들어 현실을 잊곤 했던, 그만의 작은 도피처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명석한 두뇌는 안개로 가득 찬 감옥이 되어버렸다.
아래 골목에서 올려다보는 각도에서, 세베루스는 벽에 걸린 타원형 거울 앞에 선 릴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낡은 머글 반바지와 헐렁한 블라우스를 입고 머글 원피스 하나를 대보고 있었다. 야한 꽃무늬 원피스였다. 입은 걸 본 적 없는 옷이었다. 릴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쓸어 넘겼다.
세베루스는 주머니 속 조약돌 하나를 엄지로 만지작거렸다.
그는 여름 첫 주, 오늘처럼 덥고 끈적이는 밤에 이곳을 찾아왔었다. 스피너즈 엔드에 홀로 갇혀 지낸 일주일의 비참함은 더는 견딜 수 없었다. 호그와트를 떠나서, 포터와 블랙, 그리고 그 놈들이 풀어놓은 늑대인간 녀석을 떠나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곳은 다를 거라 확신했었다. 코크워스에서는 릴리가 이성을 찾을 거라고 말이다.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서로의 존재 안에서 마법을 발견했던 이곳에서는… 그녀가 들어줄 거라고. 이해해 줄 거라고. 용서해 줄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세베루스?” 몇 주 전 그날 밤, 그녀가 따져 물었다. 릴리의 주의를 끌려고 창문을 향해 조약돌을 던졌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녀가 창문을 활짝 열고는, 탑 위의 공주처럼 그를 내려다보며 노려보았다.
“내 말 좀 들어봐.” 아래에서 세베루스가 애원했다. 손을 내밀기 위해 찾아온 비천한 왕자처럼.
“이미 다 들었어.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실수였다고, 릴리!”
“아니, 아니야. 우리 둘 다 알잖아. 네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이미 분명히 보여줬잖아.”
“무슨 소리야?”
“네가 어울리는 사람들 말이야, 세브! 네가 감싸는 사람들. 그 잘난 마법들까지…”
“내 마법이 대체 무슨 상관인데?”
“잔인해. 넌 사람들을 다치게 하잖아.”
“난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았어.”
“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녀가 으르렁거렸다. “레비코푸스가 그냥 장난이었다고 하지 마. 포터가 너한테 썼을 때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 기억의 굴욕감은 여전히 날카롭고 쓰라리게 남아 있었다. 그의 철천지원수 제임스 포터는 세베루스가 고안한 주문을 훔쳐서 조롱하는 학생들 앞에서 사용했고, 릴리도 거기에 있었다. 그 도발이 결국 그가 절대 해서는 안 될 단어를 내뱉게 만들었다. 포터의 탓이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세베루스는 영원히 처벌받아야 했고, 포터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리고 포터 뺨을 그었던 그 상처도 봤어.” 릴리가 바람에 쉿 소리를 내듯 이어 말했다. “피가 멈추지 않던데 그건 뭐야…?”
“그러시겠지.” 세베루스가 쓰라리게 비꼬며 대꾸했다. “걱정되는 건 포터뿐인가 보지?”
“걔랑은 아무 상관 없어! 이건 너와 나 사이의 문제야. 너랑 나? 우린 더 이상 친구가 아니야. 절대 아니라고. 머릿속에 똑똑히 박아둬. 다신 나 찾지 마. 진심이야, 세베루스. 다시는 네 얼굴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녀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그를 밀어냈다.
영원히.
언제까지나.
몇 주가 흐르고 여름은 덥고 비참하게 저물어갔지만, 릴리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조약돌을 던지는 짓을 한두 번 더 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요즘은 릴리의 주의를 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의 발은 자꾸만 이 어두운 골목으로 향했다. 다시 이곳을 찾아와 어둠 속에 홀로 서서, 아무도 모르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채 무엇을 얻으려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의 죽음, 그의 희망과 꿈의 죽음,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세브'라는 이름의 죽음을 기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그를 그렇게 불러준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는 다신 그를 보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세베루스는 아직 그녀를 보는 일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조약돌 한 줌을 꺼내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았다. 오늘 밤, 다시 한번 주의를 끌어볼까.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차가운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을 향해 소리치며 화를 내는 것이 나았다. 그 날카로운 초록색 눈동자가 분노로 자신을 쏘아보며, 그 시선만으로도 이 쇠락한 유령 마을 속에서 자신을 진짜 실재하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준다면…
하지만 결정을 내리려는 찰나, 시끄럽고 꽥꽥거리는 웃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라서 조약돌을 떨어뜨린 그는 재빨리 골목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머글 여자아이들 무리가 낄낄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멍청한 계집애들 같았다. 그는 경멸과 약간의 분노를 섞어 그들을 지켜보았다. 자기들이 방금 얼마나 중요하고 성스러운 순간을 방해했는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담즙처럼 치밀어 오르는 악의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계집애 무리가 릴리의 창문 앞에 멈춰 섰다는 점이었다.
“라푼젤, 라푼젤!” 가장 야하게 입은 소녀가 낄낄거렸다. 반응이 없자, 그 아이는 허리를 숙여—꽉 끼는 짧은 치마가 엉덩이 위로 팽팽하게 당겨졌다—바닥에서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의 조약돌이었다. 그 아이가 창문을 향해 던졌지만 빗나갔다. 다시 시도했다. 또 빗나갔다. 결국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아이가 나섰다. 술을 마신 게 분명한 덩치 큰 여자애가 창문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릴리!”
창문이 스르르 열리고 릴리의 머리가 쑥 튀어나왔다. 몇 주 전 그날 밤,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짙은 붉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쏟아져 내렸다. 달빛을 받은 부드럽고 창백한 피부 위로 별가루처럼 흩뿌려진 주근깨가 반짝였다. 그녀는 코크워스에 속하지 않는,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조용히 해!” 릴리가 쉿 소리를 냈다. 세베루스에게 쏘아붙였던 독기는 전혀 없었다. “금방 내려갈게.” 그녀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성직자 딸내미를 꼬셔서 클럽에 데려가다가 우리 다 지옥 가는 거 아냐?” 그 계집애가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그럴지도.” 덩치 큰 아이가 대꾸했다. “하지만 이건 신의 뜻을 행하는 거야. 불쌍한 애잖아. 일 년 내내 저 스코틀랜드 기숙학교에 박혀 살았으니. 살면서 한 번도 즐겁게 놀아본 적이 없을걸.”
“올여름 내내 좀 우울해 보이긴 하더라.” 가슴이 파인 옷을 입은, 굶주려 보이는 금발 아이가 거들었다.
“남자애들과 술 좀 마시면 싹 나을 거야.” 첫 번째 아이가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위층 창문이 다시 열리고 릴리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세베루스가 봤던 그 머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엉덩이를 간신히 가리는 아주 짧은 옷이었다. 그녀는 벌써 여러 번 해본 듯한 익숙한 솜씨로 격자 울타리를 타고 내려와, 고양이처럼 가볍게 골목에 착지했다.
“다들 왔어?” 그녀가 허벅지 위로 치마를 매만지며 무리에게 밝게 말했다.
“니네 아버지는. 괜찮아?” 첫 번째 아이가 물었다.
“주무셔.” 릴리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나간 줄도 모를걸.”
“잘됐네. 담배 한 대 할래?”
“가자.” 덩치 큰 아이가 말했다. 릴리가 담배를 받아 불을 붙였다. “버스 타려면 서둘러야 해. 이번 버스 놓치면 아침까지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한다고.”
“폴이 우리를 '로터스'에 들여보내 줄 수 있을까?”
“걱정 마.”
아이들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릴리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세베루스가 숨어 있는 어두운 곳을 지나갈 때, 릴리가 잠시 멈춰 섰다. 그는 숨을 멈추고 그림자 속으로 더 깊이 몸을 밀어 넣었다. 그녀가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담배 연기가 별 하나 없는 밤하늘로 흩어졌다. 그녀는 그곳에 그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건 그도 알았다… 한 발자국만 다가오면 그녀는 그를 볼 수 있을 텐데…
“릴리, 안 올 거야?” 덩치 큰 아이가 불렀다.
“응.” 릴리가 바보 같은 짓이라도 했던 것처럼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가자.”
그리고 그녀는 잰걸음으로 아이들을 따라갔다. 천박한 농담,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아이들은 골목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릴리는—그의 릴리,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언제나—떠나버렸다.
다시 한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