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ons

Work Header

Rating:
Archive Warning:
Category:
Fandoms:
Relationships:
Characters:
Additional Tags:
Language:
한국어
Stats:
Published:
2025-04-05
Words:
1,647
Chapters:
1/1
Hits:
7

[금수남수]사품

Work Text:

[금수남수]사품

W. 와니

 

비가 왔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지문을 눈으로 읽어 내려가다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다 공연히 흐트러진 적은 처음인 듯 싶었다. 오후 2시 40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전등을 켜지 않아도 밝다.

장마 전선이 올라온다고 기상예보가 알린지 2주가 지났다. 그간 3번이나 날짜가 수정되었고, 태풍 소식도 잠시 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렇게 가방 속에 검은 우산만 며칠 째 말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더위가 엄습했다. 푸른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다양한 상층 구름들. 열대야를 알리는 시작이었다.

말도 없이 책상에 퍼지듯 엎드려 누워있는 남수에게 텀블러를 건넸다. 살갗에 찬 기운이 닿자 남수가 슬쩍 눈 한쪽을 얇게 떴다. 뭐야..? 제 팔에 닿아있는 은색의 텀블러를 흘깃 보며 물었다. 졸려? 묻자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찬 물이야. 좀 마셔. 남수가 으응... 고양이마냥 기지개를 켜고는 비실거리며 몸을 일으켜 내 손에 있던 텀블러를 입으로 곧장 가져갔다. 꼴깍, 살짝 쳐든 고개에 도드라진 목젖이 부산스럽게 위아래로 움직였고 입가에서 물 한 방울이 살짝 흘러나와 그 목선을 따라 교복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나 이거 잠시 볼에 대고 있어도 돼?"

"응."

고마워. 말하고는 책상에 눌려서 빨개진 볼에 댔다. 그리고 이번엔 텀블러에 눌려 볼록 통통하게 나왔다.

5교시 체육은 정말 고된 일이었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달려야 했고, 게다가 한 여름이 다가오는 시점에선 강당에서 진행을 한다고 해도 땀범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끝운동을 마치고 여유시간이 남았을 떄, 평소엔 쉬는 시간까지 축구를 하던 아이들도 대형 선풍기 앞에 붙어 티셔츠를 펄럭거렸다. 남수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쉬는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로 올라갔고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한 기운에 애들이 "아, 살겠다." 각자 입을 모았고 교실 각 모서리에 달린 선풍기를 틀었다. 그 앞에 자리 잡아 잔뜩 열오른 얼굴을 식히고, 물을 꿀떡꿀떡 삼켰다. 남수는 젖었던 셔츠가 불편했는지 오자마자 자리에서 교복을 쥐어들었다.

"금수야, 나랑 화장실 좀 가자. 아, 그 텀블러도 챙겨서."

남수가 내 텀블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체육복을 벗으려고 밑단을 잡아올리다가 응. 답하며 대신 컵과 손수건을 들어올렸다. 복도로 나오니 덥고 습한 기운이 다시 끼쳤고 남수가 하.. 작게 숨을 내쉬었다. 텀블러 안에 물 있어? 정면을 보며 걷던 남수가 내 손을 잠시 내려봤다가 날 올려보며 물었다. 약간. 마실래? 너는? 남수가 무심한 얼굴로 되물었고, 난 괜찮아. 차분히 답했다. 남수가 잠시 고민을 하는 양 있더니 고마워. 하면서 두 모금을 삼켰다.

그러면서 화장실 앞에 도착했고 남수가 먼저 턱을 넘어가면서 이 텀블러 좀 잠시 써도 돼?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뚜껑을 돌려 열면서 다시 발을 앞으로 내딛어 세면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교복과 텀블러를 거울 앞에 내려놓고 찬물을 들어 두 손에 물을 담아 물세안을 하기 시작했다. 찰팍찰팍 손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물이 소리를 내며 튀었고 나도 그 옆에 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이내 뒷목에도 물을 묻히고 나는 이어 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얼굴 전체에 닿는 찬 기운에 미소가 슬몃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남수가 먼저 세안을 끝내고 텀블러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이어 나도 눈가를 슥 닦아내며 일어났고 챙겨온 손수건으로 손과 턱 밑을 닦아 내었다. 그렇게 남수는 물이 가득 담긴 컵을 세면대 올려두고는 양팔을 꼬아 제 체육복 밑단을 잡고 훌렁 벗어 올렸다. 물에 젖어있던 갈색 곱슬머리가 찰랑거리듯 흐트러지며 넥라인에서 나왔고 반짝이는 흰 살을 보이며 대충 교복 옆에 툭 놓았다. 이내 텀블러를 들어올리며 뒤를 돌았다.

"이거, 등에 좀 뿌려주라."

"…어."

남수가 건네는 텀블러를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두 손으로 세면대를 짚으며 다시 내게 등을 보였다. 난, 뿌릴게. 한 마디를 하고 들리는 응, 소리에 등 위에 물을 끼얹었다. "흣.." 확 끼친 찬 기운에 남수가 오른쪽 날개뼈를 들썩이며 몸을 비틀었고 허리선을 따라 물이 흘러내렸다. 투두두둑 타일로 물이 튀었고 남색 체육복 바지가 더 짙어졌다. 옆구리에선 아직도 똑. 똑. 하고 투명한 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잔을 받아들던 그 순간, 1초도 되지 않게 스쳤던 찬 손가락 끝이 화끈거렸다.

그렇게 남수의 부탁에 따라 세 번을 더 뿌려주었고 그때마다 남수 몸이 움찔, 움찔, 무릎 한 쪽이 살짝 꺾이며 척추선이 폭 파였고 다시 파르르 떨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만큼 내 다리도 물기로 젖어갔고 시원한 다리와는 다르게 허벅지는 점점 뜨겁게 피가 몰리는 것 같았다. 그 때 수업시간 종이 울렸고 남수가 대충 놓아놨던 티셔츠를 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시 살짝 몸을 돌려 흘러내린 물기에 젖은 앞을 보였다.

"좀 닦아줄래? 대충 툭툭 해도 돼."

"…내 손수건으로 해. 그거 땀에 젖었잖아."

아. 남수가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떠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가만히 뒤를 돌아섰다. 뚝.. 뚝.. 머리카락 끝에 어린 방울이 천천히 목선을 따라 내려가다 허리까지 쭈욱 굴러 떨어져 체육복 밴딩에 스며들었다. 나는 주머니에 곱게 넣어뒀던 손수건을 다시 빼 토옥, 토옥, 남수 왼쪽 팔뚝을 잡고 뒷목부터 닦아내기 시작했다. 천에 스며들게 지긋이 누르며 떨어트린 후 날개뼈로 옮기고, 왼쪽부터 시작해 오른쪽으로 토옥, 토옥-. 곧 날개뼈 밑으로 내려가고 다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옮겨 눌러 닦아내고, 또 밑으로 내려가고…. 그렇게 밴딩 안으로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넣어 밑까지 꼼꼼히 닦아내고 옆구리를 슥 훑어올렸다. 순간 간지러웠는지 흠칫, 오른쪽으로 몸을 빼며 고개를 돌려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얼굴은 여전히 젖어있었고 불이 붉어있었다. 난 무심히 시선을 돌려 오른쪽 옆구리도 슥 훑어올렸다. 이번엔 조금 긴장을 했었는지 움찔, 하며 살짝만 왼쪽으로 몸을 비켰다. 이내 손을 올려 꽁지머리를 쥐어 꾸욱 물기를 짜냈다. 그러곤 손수건을 앞으로 내밀어 거울 속의 남수를 보며 물었다.

"목, 닦아낼래?"

"…아니, 괜찮을 것 같아."

한 번 입을 오물거렸다가 답하고는 팔을 뻗어 교복을 집어올렸다. 그러고는 몸을 왼쪽으로 틀며 셔츠를 벌려 왼팔부터 끼워넣었다. 곧 오른팔까지 다 넣어 입고 티셔츠를 손에 쥔 채 맨 위 단추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가자. 벌써 수업 시작했겠다. 남수가 두번째 단추를 채우며 말했고 응. 답하며 같이 발걸음을 떼었다. 흰 셔츠가 덜마른 물기에 붙어 아직 열이 덜가신 살짝 붉은 몸을 비쳤다. 그렇게 나머지 단추를 채우며 물바다가 된 화장실을 뒤로 했다.

조심히 문을 열어 방금 막 수업을 시작한 듯한 선생님께 꾸벅, 죄송하다는 눈치를 보이며 인사를 하곤 약간 빠른 걸음으로 분단 사이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남수는 창가에라도 말려놓으려던 티셔츠를 그대로 자리에 가져왔다. 잠시 고민하더니 일단 접어 가방에 넣어두고 책상 서랍에서 문학 교과서를 꺼내 정면을 바라보았다. 책상 가운데에 선을 두고 맞닿을 듯한 두 손등. 찬물에 창백해진 피부가 내게 선선하게 와닿았다.

"일어나, 이것들아!"

식사를 하고 난 후 바로 한 체육, 그리고 이후에 이어지는 문학 시간. 그렇지 않아도 5교시는 졸기 쉬운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 운동을 하고 오니 6교시엔 수업이 시작한지 20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선생님께서 책상을 주먹으로 쿵, 쿵, 두들기며 소리를 치셨다. 남수도 졸았는지 그 말에 턱을 괴고 있다가 고개를 떨어트리고 그대로 잠시 멈춰있다가 슬쩍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눈을 또록 돌려 선생님을 올려보았다. 맨 앞자리라 선생님 책상에 가려져서 들키진 않았는지 선생님은 계속 뒷자리 쪽을 바라보며 이제 곧 고3 인데 지금부터 준비 안 하면 안 된다고 말을 잇고 있었다. 남수가 다시 나를 향해 눈을 돌리며 다행이라는 듯 슬쩍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이고는 자세를 곧추해 양팔을 책상에 붙이고 책을 내려보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시야로 툭, 갈색 머리가 들어왔다. 남수의 머리가 필기하는 자세 그대로 고개만 꺾여 내려왔다. 거의 잠에 든 듯 그 자세로 천천히 서서히 허리가 굽어져 내려왔다. 곱게 감긴 눈은 미간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기다란 속눈썹만 내려온 앞머리에 닿을 듯 아슬아슬했다. 그렇게 거의 책에 얼굴을 박아올 것 같이 있던 남수가 혼자 움찔이며 눈을 살짝 뜨고는 습관처럼 풀린 눈으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감으며 두 팔을 모아 제 머리를 기댔다.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있던 머리는 에어컨 바람에 말라 보송해졌다.

댕-. 간결한 종소리와 함께 쉬는 시간 멜로디가 울렸다. 남수는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일어나 시간이 없어 갈아입지 못했던 체육복을 교복으로 갈아입고 앞문으로 향했다. 교단 위에서 보니 머리가 가려져 얇은 등만 보였다. 그렇게 식수대에 가 물을 끝까지 담고 텀블러에 살짝 묻은 물방울을 닦아내 정리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회전하는 선풍기 바람에 머리카락이 편안하게 살랑거리고 있었고 촘촘한 속눈썹은 두겹으로 겹쳐 까맣게 보였다. 그런 속눈썹과 대조되는 투명한 피부엔 붉은 입술이 통통히 올라와있었고 살짝 벌어져 흰 앞니를 보였다. 나는 머리를 받치고 있는 왼팔에 톡 텀블러를 댔다. 얇은 피부에 눈동자가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이는 게 보였고 곧 미간을 움찔이며 네가 눈을 떴다.

스테인레스의 냉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감고 제 왼쪽 볼이 볼록해지게 누르고 있었다. 그러다 아직도 졸음이 덜 가신 듯 두 팔을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곤 텀블러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오른쪽 볼에 댔다.

"티셔츠 말린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근데 습도가 높아서 별로 마르지도 않을 것 같아."

이번엔 고개를 꺾어 텀블러의 밑바닥 부분에 볼을 대며 대답하는 남수의 모습에선 무기력한 게 느껴졌다. 이럴거면 차라리 비라도 왔으면 좋겠어. 시원하기라도 할 텐데. 남수의 투정 섞인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넌 어떻게 한 번을 안 졸아?"

"더위를 잘 안 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은 남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좀 괜찮아진 듯 텀블러를 내려놓았다. 부럽네. 평상시에 별로 말 수가 없는 남수의 말이 모든 학생들이 책상에 엎어져 잠들어 조용한 반에 차분히 들려왔다.

오후 5시, 어제까지만 해도 이 시간엔 해가 쨍쨍하게 비쳤는데 아까와는 눈에 띌 정도로 다르게 어두워졌다. 구름이 한 데 뭉쳐 회색빛을 이루었고 그 틈 사이로 햇빛이 가늘게 뻗쳐나왔다. 그러다 곧 들어오시는 윤리 선생님에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마지막 시간이니 만큼 교실은 묘하게 들떠있었고 하교 종이 울리자마자 터지는 말소리와 하나 둘 분주하게 가방을 챙기는 소리가 시끄럽게 교실 안을 메웠다. 그 사이에서 남수와 조용히 일어나 뒷문으로 나아갔다. 서로 말없이 걷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안녕. 집에 가는 남수에 내일 보자며 손을 가볍게 흔들고 급식실로 향했다.
문 밖까지 10명 정도 나와있는 길게 늘어진 줄에 가만히 서고 좁은 보폭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 바코드 스캐너 앞에 섰다. 몸을 돌리며 학생증을 대는데 콰과과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삑. 짧은 확인음이 들렸고, 내 초점은 급식실 문 밖을 향해 있었다. 방금 전보다 더 어둑어둑해진 하늘. 해가 지고 있다지만 너무 큰 변화였다. 나의 발은 이미 줄에서 이탈해 있었다.

교실에 올라오자마자 툭. 툭. 투둑, 툭-. 굵은 빗방울이 창문에 미끄러지며 부딪히고 있었다. 점점 많은 물방울이 유리창에 튀었다가 구불구불하게 흘러내리며 흔적을 남기고 있었고 열려있는 창문엔 커텐이 흔들리고 펴져있던 책장이 넘겨졌다. 나는 가방을 챙기고 다시 뛰어내려갔다.

철퍽, 철퍽, 지표면에 발이 닿을 때마다 흙탕물이 튀어올랐다. 머리도 축축히 젖어 올려놨던 머리는 내려왔고 셔츠는 내 살에 늘어 붙기 시작했다. 운동화도 다 젖어 안에서 물이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종아리까지 물이 튀고 있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셔츠에도 흙먼지가 붙었을지도 모른다. 온몸이 다 젖고 있었지만 내 눈은 남수가 나갔던 정문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건너지 말라는 운동장을 건너고 화단까지 넘어 단걸음에 정문으로 나서고 남수 집 방향으로 꺾었다. 그러고는 보이는 여러 갈래의 길에 멈춰 서고 숨을 토해내며 눈에 들어오는 물기를 손끝으로 닦아내고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상가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남수를 발견해내고 가방을 열어 촉촉해진 우산을 꺼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앞으로 다가갔다. 우산에 토도도독 튀는 소리가 들리고 목깃을 잡아 셔츠를 털어내는 모양새가 보였다. 젖은 앞머리를 옆으로 넘긴 얼굴이 드러났고 곤혹스러운 표정이 가림막에 그늘졌다. 물기에 젖은 셔츠가 몸에 닿을 때마다 흰 살이 비쳤고 분홍색 젖꼭지가 도드라졌다. 남수는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야에 발을 들이밀자 허공 위 초점이 없던 눈이 나를 향하고 갈색눈이 투명하게 빛났다. 동그래진 눈에 한 걸음, 벌어진 입에 한 걸음, 놀란 눈으로 말없이 깜빡이는 네 앞에 섰다.

"우산, 같이 쓸래?"

저작자 명시 필수 영리적 사용 불가 내용 변경 불가